실천하는 불교운동 ‘깨달음의 장

2004년 10월 15일 미주 중앙일보

불교 수행공동체인 정토회 의장 유수 스님이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쿠야마밸리 정토수련원에서 열린 ‘깨달음의 장’ (이하 깨장) 진행을 위해 LA를 찾았다.  거두절미하고 깨달음이란 무엇인지 스님에게 물었다.  “나라고 할 것이 없고, 내 것이라고 할 것도 없고, 내 생각이 옳다는 관념을 버려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매일의 일상에 부딪치고 세파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에게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스님은 단언했다.  “마음만 열면 깨달음을 얻는 건 세수할 때 코 만지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고.  그래도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는 기자를 보며 스님은 “경험이나 지식에 의해 형성된 주관이나 고정관념을 버리고 사물을 정말 있는 그대로는 어떤가 잘 살피고, 그래서 사물의 모습을 잘 본 뒤에는 지나간 과거나 오지도 않는 미래에 대한 염려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해 한번 해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깨달음이란 것이 이렇게 구체적인 방법과 자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니.

“세상에선 불교가 어렵다고 하고 깨달음을 얻겠다고 수행하는 사람은 많지만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수행자는 프로선수처럼, 대중은 후원부대인양 멀찌감치 따로 서 있습니다.  프로선수들의 경기를 아무리 많이 봐도 내 몸이 건강해지지는 않습니다.  깨달음의 장은 정토회 지도법사인 법륜스님이 1992년 ‘이 뭐꼬’란 화두선을 갖고 무아, 무소유, 무집착을 직접 체득하도록 한 프로그램입니다.  이번이 300차인데 한번에 18명 내외가 참여하니까 그동안 6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깨달음의 장을 거쳐갔습니다.”

그렇다면 그 동안 깨장을 거쳐간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깨장의 목적처럼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돼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무아 | 무소유 | 무집착 – 직접 체득해보는 ‘정토회’ 수행공동체

최근 진행된 본국 환경부 국정감사에서는 흥미로운 보고가 있었다.  내년부터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직매립이 금지되면서 음식물 쓰레기 처리 대책이 당면 과제로 부각되자 환경부는 “불교 정토회가 진행하는 ‘빈그릇 운동 10만명 서약 캠페인’을 실천 운동으로 실시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빈그릇 운동을 TV 광고로 제작해 곧 홍보 캠페인을 전개하겠다”는 것.  정토회가 펼치고 있는 캠페인이 정부 정책으로까지 선정된 것이다.

LA에서도 지난 5일 한남체인 앞에서 ‘빈그릇 운동’ 서약 캠페인 선포식이 열렸다.  현장에는 녹색 에이프런을 두르고, 마켓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빈그릇 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서약을 권유하는 남녀노소 20여명이 있었다.  바로 ‘깨장’을 통해 삶의 새로운 전화점을 마련한 사람들이었다.  “깨장을 통해 그동안 내가 나만 그리고 내 가족만 생각하고 살아온 걸 알게 됐어요.  세상 우주만물이 서로 연관되지 않은 게 없는데, 밥상에 매일 올라오는 밥만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 어쩌면 전 인류에 햇빛, 공기, 물 등 자연이 모두 관여해서 만들어진 건데 돈주고 샀으니 내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고마운 마음 없이 살아온 것을 알게됐습니다.  그 밥 한 그릇을 내가 직접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까요.” (정토회원 박명귀씨)

이들의 얘기는 한결같았다.  “깨장을 다녀온 뒤에는 예전같으면 불같이 화를 냈을 일도 화가 나지 않습니다.  화를 내기 전에 왜 화가 나는 걸까 그 이유를 찬찬히 살피니까 화를 낼 일이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과거 화내고 괴로워하며 쓸데없이 낭비했던 에너지를 이제는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데 쓰고 싶습니다.”

정토회가 하는 일은 크게 일회용품 근절에서 시작해 최근의 ‘빈그릇 운동’에 이르기까지 실천중심의 환경운도,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하고,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하고,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한다’는 발원에서 시작한 제 3세계 기아, 질병, 문맹퇴치 사업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북한지원과 남북통일 운동이다.  북한의 나진선봉 지역에는 어린이 영양식 가공공장을 세워 모두 1만 5천명의 어린이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의류, 의약품, 문구류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인도의 천민지역인 둥게스와리 마을엔 학교와 병원을 세워 가르치고 치료하며 마을개발 사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아프간, 필리핀, 이라크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긴급 구호활동을 펼쳐왔다.

음식 쓰레기 줄이는 ‘빈그릇 운동’ 캠페인, 환경부도 적극 지원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그 일이 좋아서 미쳐서 하는” 정토회 자원봉사자들이다.  바로 깨장을 거쳐간 사람들이다.

정토회 지도법사인 법륜 스님과 의장 유수 스님을 비롯한 실무자 50여명은 내년 3월 정토회 본부인 서울 정토법당을 떠나 경북 문경산골 정토수련원으로 들어간다.  서울을 비롯한 지방 8개 법당과 그동안 해온 환경, 구호, 통일 운동을 모두 일반 신자들에게 넘겨주고 이들은 정토수련원으로 들어가 수행에 정진하기로 했다.  대중들이 직접 법당과 불교운동을 주도하는 시대를 연 것이다.  “불교계의 사회운동은 스스로를 변화시킴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일과 수행이 하나가 되어 늦은 걸음이라도 대중이 함께 갈 수 있도록 이끄는 운동이 돼야 한다”는 유수 스님의 얘기를 들으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으로서 정토회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정토란 맑은 세상, 깨끗한 세상을 뜻한다.

신복례 기자